언론속의 공간미술

세종대왕 동상,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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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인 오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습을 드러낼 '세종대왕 동상'이 6일 새벽 서울로 입성했다.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소재 주물 제작업체인 '공간미술'에서 시작된 '세종대왕 동상' 운반작업은 작업장에서 불과 200m 떨어진 도로변으로 빠져나오는데에만 무려 2시간이 소요될 만큼 손에 땀을 쥐는 과정이었다.

요란한 차량 엔진 소리와 운반작업에 투입된 인부들의 고성.

이 모든 숨막히는 운송과정을 그 누구보다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바로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영원(62) 홍익대 교수다. 

"지금 이 순간 만큼 긴장된 적이 없다. 아마 9일 제막식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운을 뗀 김 교수는 이날 운반작업을 지켜보며 지난 6개월간의 고된 작업을 회고하는 듯 했다.

"4월 말부터 작업이 시작됐다. 한글날 제막식에 맞추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기분이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묵묵히 작업에 매진해 온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며 모든 공을 주물 제작업체인 '공간미술' 제작진에게 돌렸다.

사실 주물 작업에만 4∼5개월 걸리는게 정상이지만 50여명의 제작진들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2개월여만에 완성해 냈다.

'세종대왕 동상' 제작을 맡게 되면서 김 교수는 세종대왕의 위대한 정신과 뜻을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을지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국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세종대왕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중압감에 두 차례나 심한 몸살을 앓았다고 말했다.

백성을 하늘같이 섬긴 어버이 같이 자상한 군주의 모습을 담으면서도 대왕의 기품을 갖춘 세종대왕의 이미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당초 모델로 삼았던 세종대왕 표준 영정은 자상함은 갖췄지만 유약하고 군주로서의 품위가 떨어져 보였다는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때문에 표준 영정에다가 1만원권 초상화, 태조 이성계, 영조 대왕과 고종, 마지막 황족인 이석씨 등 여러 사람의 이미지를 참고해 지금의 '세종대왕 동상' 용안이 완성됐다.

주물 제작과정에서도 세종대왕의 용안은 세차례나 수정됐다.

김 교수가 원하는 만큼의 작품이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김 교수는 "주물 제작 과정에서 쇳물이 군데 군데 흠집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세종대왕 동상 만큼은 흠 없는 완벽한 작품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수정이 불가피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세종대왕 동상 제작의 주재료는 점토와 청동, 돌 등이다.

점토 사용량은 무려 13t. 어른용 밥그릇으로 따졌봤을 때 5만4000명분에 해당한다.

청동사용량은 22t. 10원짜리 동전 3200만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김영원 교수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국민들이 세종대왕 동상을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고 늘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며 작은 바람을 내비쳤다. <노컷뉴스>